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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김병권의 GCC 아이디어>, 청년에게 사회적 상속을 ②
작성일자 2019-05-21

청년에게 사회적 상속을 2: 자산의 평등화와 경제성장









청년에게 각자의 부모가 아니라 사회가 일정하게 기초적인 상속을 해주자는 것은, ‘자산의 평등화’를 통해 청년들에게 사회에 진입할 기회의 평등 조건을 최소한 맞춰주자는 얘기다. 그런데 이것은 청년에게만 아니라 전 사회적으로 이로운 것이다. 즉, 사회가 청년에게 공통적 자산상속을 해주면, 이는 곧 사회전체에 긍정적 피드백 효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얘기다.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전 국민적 교육투자가 국민경제 성장으로 이어진 것은?


세기적인 식민지 국가에서 세계경제규모 11위까지 오른 OECD국가 한국은 아마도 세계 경제사에서 그 유래가 없을 듯하다. 성장속도 자체만 놓고 보면 기적이라고 할 수 있는 한국경제 성장을 놓고 많은 이들이 그 비법이나 동력을 연구하고 논쟁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혹자는 ‘국가주도의 산업정책’이 자유 방임형에 비해 훨씬 우월했다는 개발 국가론을 주창하기도 하고, 혹자는 글로벌 경쟁력을 갖는 소수 대기업 그룹을 집중 육성하여 이들이 수출을 주도하게 했던 전략의 유효성을 강조하기도 한다. 또는 반공국가 한국경제의 특성상 미국이 한일 청구권 자금이나 각종 공공차관을 포함한 초기 부족한 자본동원에 많은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것이 효과가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아마 가장 많이 지명된 근거로서 한국 국민들이 엄청난 교육투자를 통해 우수한 인적자원을 단시일 안에 공급했던 것을 꼽지 않을까 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전제가 필요하다. 대부분의 국민들이 자녀 교육에 나름대로 힘닿는데 까지 투자하면 대체로 그에 합당한 성과가 나올 수 있을까? 사실 성과가 나오려면 두 가지 전제가 만족되어야 할 것 같다. 첫째는 대체로 공교육체계가 확립되어 교육기관별 격차가 크지 말아야 하며, 이와 관련되지만 부모의 재력에 따른 교육투자 격차에 따라 성과격차가 크게 벌어지지 말아야 한다. 또한 다소의 성과격차가 사회진입격차로 크게 확대되지 말아야 한다.  


경제성장에 우호적인 환경을 만드는 자산의 평등화


다수에게 상당한 교육기회의 평등을 만들어주고, 이것이 사회진입 기회의 일정한 평등으로 연결시켜준 주요한 배경은 해방 후의 토지개혁이 아닐까 싶다. 한국, 일본, 대만을 중심으로 동양에서 이뤄진 토지개혁은 2차 대전 후 이들 나라들에서 자산 불평등을 상당한 수준에서 평등화시키는 효과를 만들어냄으로써, 이후 국민들이 ‘동일선상에서의 삶의 출발’을 그래도 비슷한 수준에서 가능하게 하였고, 이것이 동아시아 성장기적의 중요한 요인이라는 것이다.   


한국에서 토지개혁이 얼마나 철저했는가에 대해서는 그간 수많은 논쟁이 있었지만, 전강수 교수는 최근 저서 <부동산공화국 경제사>에서 “한국의 농지개혁은 지주제 해체와 자작농 체제 성립이라는 측면에서는 매우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것은 토지개혁 이전에 불과 35퍼센트 수준이었던 자작농 비중이 토지개혁 이후인 1951년에는 무려 96퍼센트까지 상승했던 것으로 보아, 당시 농지개혁이 대지주들을 포함한 전체 지주 계급 자체를 소멸시켰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6.25 전쟁과 이어진 인플레이션 등이 겹치면서 지주에 대한 현금보상의 부담이 갈수록 줄어든 결과, “대지주의 나라를 소농의 나라로 변모시키는 엄청난 개혁의 사회적 비용”을 대폭 절감하여 이를 다른 곳의 자본투자로 돌릴 기회를 주었던 점을 강조한다.


이렇게 큰 사회적 비용을 들이지 않고 이뤄진 농지개혁은 이후 대토지 소유로 인한 자본투자와 자원 배분 효과를 바로잡고, 대토지 소유자들의 부패와 정치적 결탁 소지를 줄이게 하는 한편, 다수 자작농들이 지대부담에서 벗어나 자녀들의 교육투자에 전념할 환경을 조성한 것 같다. 그 결과 고속의 경제성장이 가능한 여건이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데, 실제로 아래 그림을 보면, “1960년 무렵 각 나라의 토지분배 상태와 그 후의 장기 경제성장률 사이에는 뚜렷한 연관이 존재”한다고 전강수 교수는 확인해주고 있다.








제 2의 토지개혁의 하나로서 사회적 상속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하나 있었다. 성공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것 이면에, “한국의 농지개혁은 도시토지와 임야를 개혁대상에서 제외했고, 토지 소유 불평등의 재현을 방지할 제도적 장치를 충분히 갖추지 못한” 결과, 1970년대 박정희 시대를 거치면서 도시를 중심으로 다시 자산 불평등이 심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 한국은 “2016년 부동산 불로소득의 크기가 347조 6천 억 원으로 GDP의 22.9퍼센트”가 될 정도로 부동산 불로소득의 나라가 되었으며, ‘건물주’가 꿈이라는 농담이 진담처럼 회자되는 나라로 역진된 것이다. ‘흙수저’ 비관론은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요약해 볼 때, 논리적 귀결은 현재의 자산 불평등이 비생산적 불로소득 급증과 연결되면서 경제성장 동력을 갉아먹고 있을 뿐 아니라, ‘흙수저’ 청년들의 미래 희망도 잠식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하나? 다양한 처방들이 나올 수 있다. 최근 논의되어 온 국토 보유세 신설부터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 그 가운데 청년에게 강조점을 두게 되면, 부모의 재산여부의 속박에서 다소나마 벗어나서 사회출발을 위한 최소한의 기회의 창을 넓힐 수 있는 방안으로서 ‘사회가 일정한 연령의 모든 청년들에게 기초 상속자본을 주는 것’이 고려될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 경제 발전에도 유리하다면 더욱 검토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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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e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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