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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홍기빈의 옆줄> 출산율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①
작성일자 2019-05-24

출산율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①




어떤 모드로 판단할 것인가


물고기가 옆줄을 필요로 하는 것은 자기를 감싼 물이 어디로 어떤 속도로 흘러가는가 그리고 그 속에 혹시 어떤 특정한 자기파가 실려 있는가를 감지하기 위한 것입니다. 인간의 용어로 바꾸어 이야기하자면, “세상 돌아가는 바와 바뀌어 가는 바”를 파악하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것을 파악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객관적으로 주어지는 정보와 무관하게 주관적으로 어떤 판단 모드를 동원해야 하는가를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는 데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의 판단은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인간의 판단 모드를 살펴보면 분명히 구별되는 몇 개의 것들을 나열할 수 있습니다.


1. 실제로 존재하는 세상이 어떠한가 (Sein, be)
2.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Sollen, ought to)
3.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Moegen, may)
4. 나는 무엇을 하기를 원하는가 (Wollen, will)


변화하는 상황을 제대로 감지해내는 인간의 “옆줄”을 작동하기 위해서는 상황마다 정보의 성격에 따라 이 중 어떤 모드를 동원해야 하는가를 잘 선택해야 합니다. 14세기 중반 유럽에는 치명적인 흑사병이 퍼졌습니다. 현대인이라면 이 상황에서 모두 1번의 판단 모드를 동원하여 그 병의 메커니즘을 철저히 연구하여 예방, 치료, 처리의 방법을 찾아내는 방향으로 갈 것입니다. 하지만 당시의 유럽인들 중 많은 이들은 (우리가 보기에는) 엉뚱하게도 2번 모드를 동원하여, 이 병은 자신들의 죄악에 대한 대가로 신께서 내린 재앙이며 예수 재림의 임박을 알리는 신호이므로, 뼈를 깎는 회개와 고행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조선 후기 홍대용이라는 지식인은 서양에서 전해지는 선진 문물과 지식을 보면서 이를 빨리 습득하고 싶어서 청나라 지식인들과 서신을 교환하지만, 당시 선비들의 주된 관심사는 망해버린 명나라에 대한 충성을 유지하여 “대의를 밝히는 것”이었으므로 이러한 홍대용의 행동을 정죄하려고 들었습니다. 콘돔과 경구 피임약이 개발되었을 때 어떤 이들은 이를 악마의 물건으로 보아 금지하려 들었고, 어떤 이들은 이를 최대한 잘 활용하여 원치 않는 임신과 낙태를 미연에 방지하는 쪽으로 관심을 두었습니다.


출산율의 감소 최소한 그 증가 속도의 감소라는 현상은 우리나라만의 일이 아니라 전 지구적으로 (아프리카와 아시아 전반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일입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한 체계적인 파악은 인구학자들과 사회학자들 덕분에 체계적으로 파악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1번의 문제는 이 연구자들의 손에서 해결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다음이 문제입니다.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보고 판단해야 할까요?


가장 즉자적으로 흔히 볼 수 있는 태도는 이렇습니다. 이는 실로 개탄스러운 일이며, 무슨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반드시 역전시켜야 할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를 전제로 하여 원인 분석이 시작됩니다. 어떤 이들은 여성들의 학력 신장과 사회 참여 확대가 원인이므로, 이를 역전시켜 다시 애 많이 낳는 전업주부의 위치로 되돌려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어떤 이들은 특히 청년 세대에 불리하게 되어 있는 현재의 소득 불평등 시스템을 지적하면서 이를 근본적으로 시정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어떤 이들은 이렇게 좁은 의미에서의 소득을 넘어서서 육아 및 보육 등 여성이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있는 포괄적인 사회 복지와 돌봄 시스템의 부재와 남성들의 가사 노동 방기의 사회적 태도를 원인으로 지적하면서 이를 종합적으로 전환해야만 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들을 들을 때마다 저에게 떠오르는 의혹이 있습니다. 출산율은 마땅히 올려야만 하는 물건인가요?




출산율 제고는 당위인가?


보수적인 민족주의자들은 “이대로 가다가는 몇 백 년 아니 몇 십 년 안에 한민족이 소멸한다”고 호소합니다. 또한 많은 경제학자들은 이른바 “잠재 성장률”의 개념을 들어 인구가 계속 줄어든다면 미래의 경제 성장이 둔화될 것이며, 그 결과 세수와 각종 사회 보험 기여금 수입의 축소를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출산율 제고는 지상명령이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정부는 이를 위해 상당한 재정 지출을 감행한 바 있어서, 비록 다른 여러 용도와 중첩되고 섞여 있기는 하지만 출산율 제고 정책의 명목으로 지출된 돈이 지난 10년간 100조원이라고 합니다.


<출처 : 한국일보, http://www.hankookilbo.com/News/Read/201811191504754939>


하지만 이런 종류의 당위 명제들은 과연 의문의 여지가 없는 것들일까요?


우선 “한민족이 소멸”하는 것이 왜 문제인가요? 인류의 역사란 본래 무수히 많은 민족들이 생겨나고 소멸하는 역사가 아닌가요? 생명체의 탄생과 죽음의 주기처럼 어떤 민족이 생겨나고 유지되다가 사멸하는 주기 또한 자연스러운 것이 아닌가요? 이 말을 듣고서 기분이 상하고 분노를 느끼는 분들이 계시다면, 우리 모두 한 번 스스로에게 물어봅시다. 우리는 우리 “한민족”의 영원한 지속을 위해서 어느 만큼 비용과 희생을 치를 준비가 되어 있으며 지금 현재 어느 만큼이나 실제로 치르고 있나요? 1945년 8월 16일 길거리로 쏟아져 나와 대한독립만세를 부른 이들은 무수히 많지만, 그들 중 바로 며칠 전까지 대한독립을 위해서 무언가 할 용의가 있는 이들은 얼마나 되었던가요? 정말로 그렇게 자신의 삶에서 한민족 유지를 위해 뭔가 하고자 할 각오가 되어 있는 이들은 사회 전체에 대해 떠들어 대는 대신 부모 없는 아이들을 입양하고 한부모 자녀들을 돕기 위한 노력이나 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


두 번째로 경제적인 논리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경제학자들이 쉽게 잊고 있는 점이지만, 경제 성장이 필요한 이유는 (인간과 물적 자원의) 완전고용 때문이지 그 역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다는 경고가 사방에서 나오고 있으며 실제로 주요 산업국들 대부분은 장기적 만성적 실업에 시달려 왔고, 특히 새로 노동 시장에 진입하는 청년들의 실업률은 살인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렇게 볼 때 출산율이 떨어지는 것은 재앙이 아니라 바로 이러한 4차 산업혁명의 상황에서 노동 시장에서의 줄어든 수요에 대응하여 공급이 축소됨으로써 완전고용 상태로 (절대적인 인구 숫자는 줄어들겠지만) 이행하는 바람직한 “보이지 않는 손”의 작동이 아닐까요? 이것이야말로 맬서스나 리카도 등의 고전파 경제학자들이 주장했던 “임금 철칙”의 작동의 결과로 보아야 하는 것 아닐까요? 그렇다면 맬서스나 리카도의 주장을 따라서 이러한 인구 감소를 쌍수 들어 환영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여기에 생태 경제학의 문제의식까지 겹치면, 인구 감소는 바람직한 정도를 넘어서서 오히려 절대적인 지상과제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생태 경제학의 여러 조류들 가운데에서 좀 더 급진적인 입장을 취하는 이들은 “지속가능한 성장”이란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이며 따라서 “성장 축소De-Growth”만이 인류와 지구 생명권biosphere이 살아나는 길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들의 관점에서 보자면 인구의 감소는 곧 화석 연료와 에너지를 위시한 각종 천연 자원의 고갈 및 생명권 파괴 속도의 감소를 뜻하는 것이므로, 바람직한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국가 아니 세계적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심지어 조절할 필요까지 있는 일일 것입니다. 목사였던 토머스 맬서스가 새로 결혼한 부부들의 신혼집을 가가호호 방문하여 제발 성생활을 자제하여 출산율을 낮추라고 설교하고 다녔던 것처럼 말입니다.


저는 여기에 개진된 여러 입장과 주장들 중 어느 것이 옳다고 주장하거나 편들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문제가 피상적으로 보는 것처럼 간단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출산율을 올려야 한다”라는 자명해 보이는 판단도 조금한 생각해 보면 따져보아야 할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출산율을 올리기 위해 어떤 정책을 취해야 하는가”라는 문제로 섣불리 토론의 주제를 옮기기 이전에 “출산율이 현존하는 산업사회의 운명에 있어서 갖는 의미와 위치는 무엇인가”라는 보다 근본적인 질문으로 한 걸음 물러날 필요가 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가임여성 거주 지도를 작성하고, 여성들의 학력을 낮추어야 한다는 보고서를 생산하고, 더 많이 낳아 행복하게 살자라는 설익은 캠페인을 펼칠 때가 아닙니다.


그런데 이렇게 뒤로 물러나면 더 풀기 힘든 난제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3번의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판단 모드를 사용해 보죠. 출산율을 올려야 한다 혹은 낮아지도록 해야 한다라는 판단 이전에 던져야 할 질문이 있습니다. 출산율을 우리가 조절하는 일은 과연 가능한 것일까요?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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