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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연재하는 글들은 우리 모두가 이 위키토피아의 건설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할 뿐만 아니라 나서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열기를 불어넣기 위한 글들입니다. 인류 진화사에서 산업 문명이 차지하는 위치가 무엇인가와 같은 거시적인 주제로부터 대한민국의 출산율 정책은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와 같은 구체적인 주제들까지, 현미경과 망원경을 모두 동원하여 생각을 나누고자 합니다.
제목 <홍기빈의 옆줄> 출산율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②
작성일자 2019-05-29

출산율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②




(출처 : 인구보건복지협회 http://www.ppfk.or.kr)

출산율은 사회가 조절할 수 있는 것일까? 


출산율 조절 혹은 통제라는 것은 과연 가능한 일일까요? 전에 말한대로 출산율 제고라는 명목과 관련되어 지난 10년간 100조원이 넘는 정부 예산이 지출되었다는 점을 생각해 볼 때, 당연히 국가와 사회의 힘으로 조절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은 듯합니다. 실제로 70년대를 기억하는 분들은 “아들 딸 구별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잘 기른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 등의 구호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개발도상국에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인구 폭증을 통제하기 위한 당시 정부의 적극적인 산아 제한 정책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정책은 상당한 (혹은 지나친) 성공을 거두어, 실제로 지금 한국의 출산율은 세계 최하권을 오가고 있습니다. 아마 우리나라보다 더 유명하고 극적인 사례는 한 자녀만 낳도록 철저하게 제한했던 중국의 경우입니다. 이러한 엄격한 정책은 상당한 효과를 거두어 이제 중국 또한 오히려 출산율 감소의 문제를 안게 되었고, 정부 당국 또한 그러한 한 자녀 허용 정책을 크게 완화시키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러한 사례들을 보면서 우리는 출산율은 국가와 사회가 나서서 조절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성공이 그 반대의 방향 즉 출산율을 올리는 쪽에서도 나타날 수 있을까요? 영어 표현에 “줄로 밀어 낸다push on a string”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어떤 물건을 끌어 당길 때에는 줄이 큰 힘을 발휘하지만, 밀어낼 때에는 줄이라는 것이 무용지물이며 막대라든가 다른 도구가 필요하게 됩니다. 즉 어느 한 쪽 방향으로의 통제에는 힘을 발휘하지만 그 반대쪽 방향으로의 통제에는 힘을 쓸 수 없는 도구나 방법을 억지로 사용하여 아무 결과도 낳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정부가 사용하는 주된 방법인 법과 규제와 감시를 통한 강제로 아이를 더 낳지 못하도록 만드는 일은 가능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이 과연 그 반대로도 작동할 수 있을까요? SF 영화에나 나오는 극단적인 전체주의 사회가 아닌 다음에는 부부들에게 특히 여성들에게 아이를 더 낳으라고 강제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러니 결국 이런저런 캠페인과 “인센티브”를 쓸 수밖에 없거니와, 이게 과연 아이를 낳는다는 엄청난 일로 여성들을 끌어들일 수 있을 만큼 강력한 게 될까요?


어떤 이들은 아이를 낳고 자신들의 생물 종을 재생산하는 것은 생물학적인 본능이기 때문에 잘만 기회를 조성하면 사회가 특히 여성들이 아이를 쑥쑥 낳게 될 것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 보아야 합니다. 동물 중에 부모가 자식을 20년 이상 돌보아야 하는 동물이 있나요? 사람의 수명이 긴 편이라는 사실을 감안한다고 해도, 생애의 4분의 1 이상을 양육에 바치는 동물이 있나요? 이는 아이들 쪽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남녀 모두 15세면 충분한 생식 능력을 가지게 되지만 (로미오와 줄리엣은 16살 14살이었습니다!) 막상 결혼을 하여 출산을 하려면 30세까지는 기다려야 하며, 그 15년의 기간 동안은 허벅지를 칼로 쑤시며 욕망을 참아내든가 그게 아니라고 해도 출산이라는 생식 기능을 충분히 발휘하지는 못하게 됩니다. 생식 능력을 가진 뒤에도 15년 씩 그것의 발산이 늦추어지도록 짜여져 있는 동물 세계가 인간 말고 또 있나요? 지금 말한 인간 생애 주기의 두 가지 특징은 전통 사회보다는 (이 때는 14살에 결혼시키는 조혼도 많았고 또 성년으로 인정받은 뒤에는 독립적인 어른으로 살아갔습니다) 분명히 인류 역사가 산업문명으로 진입한 뒤에 두드러진 경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요컨대, 인류는 산업혁명 이후 적어도 종의 재생산을 둘러싼 인생 주기라는 점에서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생물로 진화해 나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한 개체가 하나의 버젓한 독립적 개체로 성장하는 과정이 길고 복잡해지는 현상이 산업시대의 인류에게 나타나면서, 아이를 낳고 기르는 문제는 부모들 특히 더 많이 몸과 마음을 출산과 육아와 양육에 쏟기 십상인 여성들에게 있어서 실로 감당하기 힘든 부담이 됩니다. 옛날 어른들 특히 남자들은 그냥 낳아놓으면 저절로 자라는 게 아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산업시대의 인류는 더 이상 그런 식으로 아이를 낳고 기르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엄청난 부담과 리스크 앞에서 출산이라는 문제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만약 이렇게 문제의 깊이가 산업 문명 시대에 인류의 새로운 진화라는 차원으로까지 닿아 있다면, 이를 그 알량한 국가 정책 몇 가지로 역전시킨다는 것은 사실상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가능성이 없는 짓일 겁니다. 올해 초 [이코노미스트]지에는 그래서 “인구는 정치가들이 어쩔 수 있는 게 아니다Demography is too powerful for politicians to control”이라는 기사가 실리기도 했습니다. 또한 다음의 차트를 한 번 주목해 주십시오.





 출처: 「'Remarkable' decline in fertility rates」 by James Gallagher, BBC News (2018년 11월 3일)





저는 위의 차트가 이와 같은 우리의 의심을 뒷받침하고 있다고 봅니다. 이 표는 1950년 이후 2017년까지 거의 70년에 가까운 장기간에 걸쳐 전 인류의 출산율의 추세를 보여줍니다. 이를 보면 출산율 감소라는 것이 결코 최근에 나타난 문제도 아니며 또 몇 몇 나라 심지어 일부 대륙에 국한된 현상도 아니라는 것 그야말로 전 인류 차원에서 나타난 문제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이 표에 나타난 70년의 기간이 그야말로 전 지구적인 즉 전 인류의 차원으로 산업화가 확산된 시기라는 데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18세기 말에 산업혁명이 시작되기는 했지만 2차 대전이 끝날 때까지도 산업화를 이룬 나라는 일본과 서유럽 및 북미 대륙 정도에 국한되어 있었고, 나머지 대부분의 지역은 식민지나 반식민지 상태로 있거나 독립한 상태였다고 해도 전통적 사회 경제 구조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전 지구적 차원에서의 산업화라는 것은 2차 대전이 끝나고 탈식민화와 공산권이 출현하는 가운데에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진영이 공히 경제 발전을 미래의 전망으로 내세우고 성장 경쟁을 벌이면서 본격화됩니다. 그리고 특히 90년대에 들어 공산권과 “제 3세계” 지역이 서구 자본주의 진영과 하나의 시장으로 통합되면서 (신자유주의적 지구화) 이러한 전 지구적 산업화는 더욱 가속도가 붙게 됩니다. 결국 본격적으로 전 지구적 산업화가 벌어졌던 지난 70년의 추세를 볼 때, 출산율 감소는 산업사회에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경향이 아니냐는 게 합리적인 의심이라고 보입니다. 즉 출산율 감소는 산업 문명 시대에 인류가 적응하면서 생겨난 “진화의 결과”가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러한 거스를 수 없는 근본적인 흐름을 가지고 정치가들과 관료 몇 명이 머리에서 짜낸 알량한 정책으로 역전을 시도하는 게 과연 가당한 일일까요? 다음 글에서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하겠지만, 이러한 변화의 직접적인 원인은 여성들이 스스로의 “좋은 삶”에 대해서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지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여러 장치들 (노동 시장에의 참여, 피임약, 자유로운 성 문화, 도시화의 진전 등등)이 나타나게 된 것에 있습니다. 저의 할머니들께서는 각각 11명, 13명을 낳으셨습니다. 저의 어머니는 3명을 낳으셨습니다. 저희 부부는 아이가 한 명입니다. 할머니들께서는 여성의 “좋은 삶”은 그저 일생에 걸쳐 아이 많이 낳고 잘 기르는 것이라고 생각하셨거나 아예 아무 생각이 없으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이후 세대의 여성들은 절대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여성들의 변화된 인생관과 세계관의 흐름은 결단코 되돌릴 수 없는 비가역적인 것이라고 보입니다. 팔 다리가 지느러미 비슷하게 바뀌는 것만이 진화가 아닐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과 생활 형태의 극적인 변화 또한 마땅히 진화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출산율 감소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는 전혀 다른 근거 위에 서야 하는 게 아닐까요? 역사의 아니 진화의 수레바퀴 앞에 사마귀처럼 대들다가 돈만 쓰고 박살이 나는 대신, 출산율 및 인구 감소를 하나의 정해진 상수로 받아들이고 거기에 적응할 수 있는 새로운 사회의 모습과 틀을 구상하고 설계하고 건설하는 작업으로 말입니다. 저번 글에서 말한 대로 “한민족의 소멸”에 대한 걱정이나 잠재 성장률의 저하를 내걸고 출산율 제고를 지상명령이라고 여기는 대신, 인구가 줄어들면서 새로운 균형 상태에 도달하기까지의 이행 과정을 최소한의 혼란과 고통으로 겪을 수 있도록 함께 머리를 짜서 지혜롭게 대처하는 게 지금 우리가 할 일이 아닐까요?


이는 다시 다른 문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앞에서 말한 “당위” 차원의 판단의 모드를 동원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출산율 감소는 바람직한 일인가 아닌가의 문제입니다. 이는 여성의 자유, 자신의 육신과 인생에 대한 자기 결정권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현재 인구 문제 담론에서 실로 경악할 정도로 무시되고 있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이는 다음 글에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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