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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허먼 데일리, <성장을 넘어서: 지속 가능한 발전의 경제학> (열린책들, 2016)
등록일 2017-05-22

허먼 데일리, <성장을 넘어서: 지속 가능한 발전의 경제학>
(열린책들, 2016) 역자 후기
박형준


21세기 경제학의 새로운 출발점을 제시하다

새로운 정보와 지식을 제공해 주는 책은 흔하게 접할 수 있지만 우리의 사고체계를 바꿔주는 책은 그리 많지 않다. 허먼 데일리의 <<성장을 넘어서: 지속 가능한 발전의 경제학>>은 그리 흔치 않은 후자에 속하는 책 중에 하나라고 말하고 싶다. 이 책은 우리가 경제라고 부르는 사회적 행위의 본성에 관해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있으며, 그로부터 기존 경제학의 문제점을 매우 세밀하게 비판적으로 설명함과 동시에 생태경제학이라는 대안적인 경제학 이론을 체계적으로 소개해 주고 있다. 그동안 주류경제학 이론을 비판한 저서들은 꽤 많이 나왔지만 체계적인 대안 이론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는 데까지 나아가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허먼 데일리는 단순히 환경의 중요성을 강변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섭리에 따르는 경제 패러다임을 확립하고, 주류경제학에서 쓰이는 주요 개념들을 아주 새롭게 재정립했다. 또한 주류경제학에 대한 이론적 비판에 그치지 않고, 앞으로 우리가 어떤 원칙과 지표를 가지고 사회적으로 경제를 조직해 나아가야 하는지에 관해 실천적인 해답도 제시한다. 기후온난화와 장기불황이라는 양대 글로벌 재앙 속에서 아직 미래를 포기하지 않고 실낱같은 희망의 끈을 잡고 있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봐야 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큰 박스 하나를 더 그렸다면”(p.21) 얻게 되었을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저자 허먼 데일리는 아주 간단한 도해 하나로 주류 경제학의 한계에 정곡을 찌르고 동시에 대안적인 경제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주류경제학의 가장 기본적인 설명 도해인 경제순환 모형의 외곽에 큰 박스를 하나 더 그린 것이다. 이를 통해 누구나 다 알지만 주류 경제학 이론에서는 무시하고 있는 불변의 진리 하나를 상기시켜 준다. 바로 “인류의 경제활동은 유한하고, 성장하지 않으며, 물질적으로 닫힌 생태계 속에서 이루어진다”(p.11)는 사실이다. 본문에서도 비슷한 도해가 소개되어 있지만, 이야기를 쉽게 풀어가기 위해 저자가 원하는 그림을 여기에서 다시 한 번 그려 보았다.


 


저자는 추가로 그린 환경이란 네모상자 하나가 아주 다른 “선분석적 세계상”을 제공해 준다고 말한다. 선분석적 세계상은 패러다임, 세계관, 관점 등의 의미로서 우리의 생각을 규정하는 인식의 틀이다. 저자가 말하는 이 네모상자가 만들어내는 차이는 무엇인가?

환경이라는 외곽의 박스는 잠시 잊고, 안쪽의 원래 모형을 먼저 보자. 주류경제학에서는 기업과 가계 두 경제 주체를 상정하고, 가계 주체가 소유하고 있는 생산요소를 기업 주체가 (1) 생산시장에서 구매해 생산과정에 투입하고, 그 결과로서 생산된 재화와 서비스를 가계 주체들이 (2) 소비시장에서 구매해 사용해 버리는 순환의 무한 확대 과정으로서 경제를 규정한다. 이 순환 모형에서 물질적 요소들은 시계방향으로 흐르고, 그 가치를 표현하는 화폐는 반시계방향으로 흐른다. 생산된 재화와 서비스뿐만 아니라 생산요소들도 모두 상품이며,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각 주체의 욕구(혹은 필요)에 따라 모든 상품들이 균형 있게 배분되고, 그 고유한 상대적 효용가치에 따라 합당한 가격으로 매겨져 교환된다고 전제된다. 따라서 경제순환 과정은 그 자체적으로 완전한 균형을 이루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각각의 주체는 생산과정에 기여한 만큼 금전적 보상을 받기 때문에 그 안에 이미 분배 정의가 실현되어 있다.

이런 “선분석적 세계상”을 극단적으로 추구한 것이 바로 신자유주의이다. 이런 입장에 서면 당연히 국가의 개입은 최대한 배제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효율적인 배분과 공정한 분배의 균형 있은 순환흐름이 깨진다고 주장하게 된다. 이러한 자율조정시장 신화에 대한 비판은 그동안 많이 나왔다. 그 중 대표적인 관점이 바로 (범)케인스주의이다. 단순화의 오류를 범할 수 있지만, 허먼 데일리의 생각에 따라 간단하게 케인스주의를 표현하자면, 위의 주류 경제학 경제순환 모형에 국가라는 총수요 관리 주체를 하나 추가한 것이다. 저자는 케인스가 대공황의 원인을 고민하며 신고전파 경제순환 모형에 들어 있는 “세이의 법칙과 일반적 과잉의 불가능성”을 버리고 외부 요소로 간주되었던 국가를 포함시키는 “혁명적인” 경제순환 모형을 제시했지만, 케인스 모형이 “우리 시대의 주요한 문제를 분석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말한다(94페이지 참조).

허먼 데일리가 말하는 주요한 문제는 바로 이 책의 핵심 주제인 환경적 제약이다. 케인스 경제모델이 ‘효율적 배분’에서 정부 역할의 중요성을 부각시켰고, 효율적 배분에 의한 성장이 분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분배 문제가 효율적 배분과 안정적 성장을 가져온다는 주장을 가능케 했지만, 현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로 부상한 생태계 대비 경제 “규모”의 문제와 관련해서는 주류 경제학 모델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고 그는 말한다. 그러면서 그동안 경제학자들과 위정자들이 의도적으로 혼용해 온 양적인 성장질적인 발전을 구별하고, 전자에서 후자로 우리의 지향을 전환하자고 제안한다.

저자가 보기에 주류 경제학과 케인스주의 모두 경제가 의존하고 있는 자연환경, 즉 위의 그림에서 경제순환 모형을 담고 있는 외곽 네모상자의 “생물 물리학적” 한계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경제의 양적 성장을 측정하는 지표인 GDP가 커지면 사회가 발전하는 것이고, 인류가 더 행복해 지는 것이라 전제하고 세계적 차원에서 경제를 조직해 왔다. 잘못된 생각이지만, 그동안 양적 성장 모델이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이 책 96페이지에 제시된 그림처럼 경제의 크기가 그 투입요소의 원천이자 쓰고 버린 폐기물의 매몰지인 자연환경의 크기보다 상대적으로 많이 작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20세기에 들어서며 급격히 이루어진 전 세계적 산업화로 그림에서 설명한 것처럼 “텅 빈 세계”에서 “꽉 찬 세계”로 전환되면서, 이제는 “규모”의 문제를 중심으로 경제를 조직해야 한다고 허먼 데일리는 주장한다.

가령 전 세계 GDP가 매년 5퍼센트씩 지난 100년 간 성장해 왔다고 가정해 보자. 세계경제의 크기가 애초의 약 130배 규모로 커졌을 것이다. 반면, 자연환경은 저자의 말대로 성장하지 않는다. 59페이지 모래시계 그림1에서 잘 표현했듯이, 경제성장은 태초에 지구표면에 비축된 “저엔트로피 에너지 스톡”을 급속히 소진하며 더 이상 쓸 수 없는 “고엔트로피 에너지로” 전환시키는 과정이기 때문에, 인간에게 가용한 자연환경은 많이 줄어들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지구온난화로 대변되는 각종 환경재앙들은 인류가 더 이상 지구에서 살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나올 정도로 환경이 파괴되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허먼 데일리는 인류의 경제활동이 더 이상은 양적 성장이 불가능한 지점까지 팽창해 왔다는 판단 아래 “인구와 물적 자본은 제로 성장 상태지만, 기술과 윤리는 지속적으로 향상되는 상태”로 정의되는, 즉 성장이 “자원의 재생과 폐기물 흡수라는 지속 가능한 환경의 역량을” 넘지 않는 선에서 이루어지는 “정상 상태 경제steady-state economy”를 인류 경제의 지속 가능한 발전상으로 제시한다.


열역학 제2법칙에 근거한 주요 경제학 개념들의 재정립

경제성장을 측정하는 지표인 GDP(혹은 이 책에서는 과거 주로 쓰던 GNP)는 특정 기간 동안 한 국가 내에서 새롭게 창출된 부가가치의 총합을 의미한다. 저자의 지적대로 이 개념은 “경제적 행위를 존재케 하는 자연계는 무시하는 반면, 인간의 기여가 갖는 상대적 중요성과 독립성을 과장하고 있다”(p.122). 현재의 부가가치 개념이 거의 전적으로 노동과 자본의 기여만을 인정하고 있음을 비판한 것이다. 인간의 경제시스템이 자연 환경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열린 하위 체계”이지만 가치는 위의 경제순환 모형에서처럼 마치 독립된 시스템에서 노동과 자본에 의해 만들어지는 듯 인식되고 있다. 저자는 이런 인식의 기반이 에너지가 사라지지 않고 형태만 변환된다는 열역학 제1법칙에 있다고 본다. 허먼 데일리는 이것은 “텅 빈 세계”에서 일시적으로만 작동할 수 있던 원리이고, “꽉 찬 세계”에서는 인간이 쓸 수 있는 에너지에서 쓸 수 없는 에너지로의 직선적 흐름을 의미하는 열역학 제2법칙, 즉 엔트로피 법칙에 근거한 경제원리가 요구된다고 주장한다. 그 원리에 기초한 정상 상태 경제학에서는 “자연이 더해준 가치가 노동과 자본에 의해 더해지는 가치와 동등하게 평가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p.128).

저자가 그 가치를 어떻게 화폐가치로 평가하고 계산할 수 있는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지는 않지만 접근방식은 제시하고 있다. 주로 기존 주류경제학에서 쓰고 있는 주요 개념들을 새롭게 정의하는 방식이다. 먼저, 비용-편익 분석을 저자가 말하는 거시 “규모” 경제에 도입해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가령 나무로 탁자를 만들면, “편익은 얻어지는 경제적 서비스고(더 많은 탁상), 비용은 희생되는 생태계 서비스다(이산화탄소를 격리해 주고, 야생 생물에 서식처, 침식 방지, 지역 냉각 등을 제공해 주는 나무의 수가 줄어든다)”(p.130). 이로부터, 생산은 한계효용과 한계비용이 같아지는 지점까지만 해야지 그 지점을 넘어서면 “반경제적인 상태”로 진입하기 때문에 경제가 “성숙한 규모에 이르게 되면” “성장이 아닌 유지를 위한 것”, 즉 정상 상태 경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결론을 이끌어 낸다. 자연 자본의 소비를 비용으로 정의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은 단순히 환경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캠페인 구호가 아니다. 그는 실제로 자연자본을 고갈시키며 얻는 돈을 소득으로 계상하는 현재의 GDP회계를 비판하며 이를 비용 쪽에 올려야 한다고 말한다.

정상 상태 경제에서는 자본재의 개념이 자연으로 확대된다. 저자는 이를 기존 경제학에서의 자본재를 인공 자본이라 부르고 생태계를 자연 자본이라 부른다. 둘 간의 관계를 대체제가 아닌 보완재라고 규정하며 “공급이 가장 부족한 요소가 [전체 생산을] 제약하는 요소로 작동한다”고 말한다. “텅 빈 세계”에서는 아직 인공 자본이 제약요소였지만 “꽉 찬 세계”에서는 자연 자본이 제약요소가 된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이제는 투자를 자연 자본 쪽으로 전환하고 집중해야 한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자연 자본에 투자한다는 게 무슨 말일까? 허먼 데일리는 이 투자의 “일반적 원칙은 비재생 자원을 소모해 버리는 속도와 재생 가능한 대체물의 발전 속도를 동일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규정한다. 부연하면, 저자는 경제학의 감가상각 개념을 자연 자본에 적용해, 비재생 자원은 최대한 아껴 쓰고, 어쩔 수 없이 처분해서 얻는 수입은 재생 자원 쪽에 투자해 전체 자원의 규모가 유지되게 만든다는 의미로 자연 자본에 대한 투자를 사용하고 있다.

자본과 투자의 개념이 자연 자본으로 중심 이동함에 따라 효율성 개념도 같이 변한다. 허먼 데일리는 생산효율성을 다음과 같은 항등식으로 표현한다(p.160).

 

잃게 되는 단위 자연 자본의 서비스 당 얻게 되는 인공 자본의 서비스라고 생산 효율성을 정의하고, 이를 4가지 요소로 분해한 것이다. 가령 나무를 잘라 탁자를 만들면 탁자가 주는 서비스를 새롭게 얻지만 나무가 자연 상태에서 해 왔던 공기정화 서비스는 잃게 된다. 오른쪽 항 첫 번째 요소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효율성 개념이다. 기술적으로 인공자본의 단위 당 서비스 제공 수준을 높이는 것이다. 허먼 데일리는 여기에 개인들 간의 자원 배분 효율성과 분배 효율성도 포함시킨다. 다시 말해, 지불능력의 격차를 줄여 “부자들의 낮은 한계 효용 사용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높은 한계 효용 사용 쪽으로 자원을 재분배하면” 효율성이 높아진다는 뜻이다. 두 번째 요소는 단위 처리량 당 인공 자본이 얼마나 오래 지속되는가를 나타낸다. 말하자면, 휴대폰을 4년 사용하는 것과 1년 사용하는 것 사이의 차이에 의한 자원 효율성이다. 세 번째 요소는 비슷한 재생 자연 자본 중 소모된 양을 상대적으로 더 빨리 재생시킬 수 있는 역량을 비교하는 효율성 개념이다. 네 번째 요소는 처리량을 뽑아낼 때 사용되는 자연 자본 스톡의 양과 그로 인해 잃게 되는 자연 서비스의 비율을 측정하는 효율성 개념이다. 이를 “생태 서비스 효율성”이라 칭한다. 저자의 설명대로 삼림을 개발할 때 우리는 숲의 공기정화 역량에 변화를 줄뿐만 아니라 야생서식처, 사방, 집수 등 다양한 생태서비스에 영향을 미친다. 종합적으로 이러한 생태서비스들의 희생을 최소화화 하는 것이 효율성 있는 개발로 정의된다.


자연 자본의 보존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실천적 방안들

앞에서 잠시 언급했듯이, 저자는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실천적 방안으로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국민계정의 소득개념과 회계방식의 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가 제시하는 소득개념은 “지속 가능한 사회적 국민 순생산(SSNNP: sustainable social net national product)”이다(p.187). SSNNP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구해진다.
SSNNP = NNP - DE - DNC
(여기서 NNP = 국민순생산, DE = 방어적 비용(defensive expenditures),
DNC = 자연 자본의 감가상각(depreciation of natural capital))


국민순생산은 현재의 국민계정대로 국민총생산에서 감가상각을 뺀 값이다. 방어적 비용은 경제 성장으로 인한 환경파괴, 자원의 과잉착취, 도시화에 의한 삶의 질 악화, 범죄와 사고 등 각종 위험 증가, 교통사고와 의료비 증가, 노동환경과 삶의 환경의 전반적 악화 등을 의미한다. 그리고 DNC는 인공 자본의 감가상각을 고려하는 현행 회계방식을 자연 자본에 적용한 개념이다. 이런 방식으로 국민소득을 회계한다면, 천연자원을 뽑아내 팔아서 버는 소득은 더 이상 소득으로 계산되지 않는다. 감가상각으로 제해지거나 비용으로 계산된다. 허먼 데일리는 힉스(John Richard Hicks)를 인용하며 국민소득계정의 의미를 이렇게 말한다. “소득은 이론적으로 엄밀한 개념이기보다는 신중한 행위를 위한 실천적 가이드다.” GDP 성장률 높이는 것을 국정 목표로 삼고 있는 현재의 관행을 반성하게 만드는 구절이다.

두 번째 실천적 방안은 조세정책에 관한 것인데, 논란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 허먼 데일리는 “우리의 과세 기준을 노동과 소득에서부터 처리량 쪽으로” 이동하자고 제안하며 이를 “생태적 조세 개혁”이라 칭한다(171페이지 참조). 다시 말해, 일해서 얻는 소득에 대한 조세는 줄이고 자원사용량을 조세의 기반으로 삼자는 것이다. 이를 통해 자연 자본의 가격을 올리면, 사용량은 줄고 “자연 자본의 생산성 극대화에 동기 부여가” 되어 효율성도 높아질 것이라 주장한다. 저자는 “소득세 구조는 전반적인 조세 구조의 누진적 성격을 보존하는 방향으로 유지되어야”하며, 소득이 아주 낮은 사람들에게는 “역소득세”, 즉 기본소득이 주어져야 한다는 말을 잊지 않는다. 그렇지만 소득세는 주목적을 재정수입보다는 재분배에 맞추고, 정부의 수입은 “처리량 최소화”를 목적으로 자연 자본에 기초를 두자고 제안한다.

마지막으로 허먼 데일리는 국제 자유무역의 억제를 제안한다. 자유무역에 대한 그의 비판적 사고에는 그동안 나온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많은 비판들을 다 포함하고 있지만, 특이한 점이 있다. 바로 환경적 측면에서 자유화에 반대한다는 사실이다. 그는 자유무역에서 말하는 “지구적 경쟁력”이란 슬로건은 “실질 자원 생산성의 증가보다는 임금을 낮추고, 환경적이고 사회적인 비용을 외부화하며, 소득을 올린다는 착각 속에 저가로 자연 자본을 수출하는 표준저하 경쟁을 하자는” 기만적 구호라고 일축한다. 그리고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지는 못하지만, “지금으로부터 10년 후, 지구적 경쟁력을 키우는 데 필요하면 뭐든 닥치는 대로 조정을 해서 수출 주도 성장을 촉진하자는 진부한 슬로건을 대체해, <자본의 재국민화>와 <국가경제와 지역경제의 발전을 위해 공동체 속으로 자본의 뿌리 내리기>가 유행어가 되고 뜨거운 관심을 받는 개념이 되어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로 그의 바람을 표현한다.


마치며

이 책은 허먼 데일리가 1970년대부터 축적한 자신의 연구를 1996년에 단행본으로 엮어 만든 것이다. 이 점에서 한편으로 저자의 깊은 혜안에 감탄하게 되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인구수와 일인당 국민소득 등 수치가 옛날 것이어서 최근의 상황을 반영했으면 하는 아쉬움을 느꼈다. 하지만 일찍부터 주류 경제학의 문제점들을 파악하고, 대안적인 생태경제학을 체계적으로 준비해 왔다는 사실과 아직 세계화가 본격적으로 펼쳐지기도 전에 그것이 야기할 문제점들을 정확히 예견했다는 점이 제기될 수 있는 모든 약점을 압도한다.

허먼 데일리가 제안한 정상 상태 경제의 개념은 아니지만, 저자가 책을 낸 이후 이른바 “지속 가능한 발전”이란 담론이 일반화되기 시작했고, 이제는 세상이 보편적 시대정신으로 수용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그 증표의 하나가 최근 이루어진 파리협정라 불리는 유엔 기후변화협약이다. 우여곡절 끝에 2012년 12월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의 195개 회원국이 산업화 이전(1850~1900년 평균) 대비 지구의 평균온도 상승폭을 2℃이하로, 최대 1.5℃까지 낮추기로 합의했다. 이 신기후체제는 2020년 만료 예정인 교토의정서를 대체해, 앞으로 세계적 차원에서 온실가스 배출량을 축소해 나가는 주요 장치로서 작동할 것이다. 195개나 되는 회원국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축소할 온실가스 배출량에 대한 국제법적 구속력을 부여하는 데는 실패했고, 자발적 참여에 맡겨졌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G2인 미국과 중국이 파리협정에 공동비준하면서 이 협정의 실효성에 대한 의구심이 한층 약해졌다. 미국은 2025년까지 2005년 대비 26~28퍼센트, 중국은 2030년까지 2005년 대비 60~65퍼센트 탄소배출량을 줄이겠다는 계획을 제출했다. 한국도 현시점의 2030년 배출량 전망치보다 37퍼센트 감축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파리협정은 온실가스 배출량의 55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는 55개국이 비준하면 자동 발효되는데, 그렇게 되면 1997년 교토의정서 이후 줄곧 논의되어 온 탄소배출권 거래가 활성화될 것이다. 각국이 감축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그 이상의 탄소배출량은 목표를 달성한 다른 나라들로부터 그만큼의 배출권을 사와야 한다. 탄소배출권은 허먼 데일리가 “오염 허가증” 혹은 “오염 배출권”이라고 칭하며 정상 상태 경제를 위해 꼭 도입해야할 제도라고 주장한 것이다. 환경보호를 상품화하여 파생상품처럼 거래하는 것이 올바른 방법인지를 놓고 논란이 끊이지 않지만, 저자는 이 기제의 요지는 “오염의 전체 규모를 제한하는 것”이라 규정한다. 저자가 강조하는 배분의 경제, 분배의 경제, 규모의 경제의 구분에서 탄소배출권은 우선적으로 세 번째 범주에 속한다는 말이다. 허먼 데일리의 탄소배출권 지지와 관련해 또 한 가지 생각해야 할 부분은 그가 이것을 분배와 연결시킨다는 점이다. 저자는 탄소배출권이 “시민들과 기업들에게, 그리고 공공 자산으로 집단적으로 동등하게 분배”된 후에 “정부에 의해 개인들에게 판매되거나, 경매 형태로 거래될 수도 있다”고 말한 것이다(p.101). 기업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현재의 논의하고는 차이가 있다.

지속 가능한 발전이 시대정신으로 자리 잡았다는 다른 한 가지 증표는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의 핵심 요소 중 하나인 신재생에너지의 대두이다. 산업혁명 이후 세계는 화석연료에 기초해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루었지만, 그만큼 빨리 자원을 고갈시키고 환경을 파괴해 왔다. 태양광 발전을 중심으로 풍력과 수력 발전에서 펼쳐지고 있는 기술혁신과 더불어 테슬라로 대변되는 전기자동차의 부상은 21세기의 경제가 화석연료 의존에서 탈피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던져주고 있다. 또한 4차 산업혁명의 가장 핵심적 특징인 사물인터넷과 다양한 센서 기술의 결합은, 저자가 말하는 효율성 요소들 중 일부이지만, 자원의 낭비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산업이 재조직될 수 있는 잠재성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허먼 데일리 말대로 기술이 아무리 혁신적으로 발전한다고 해도 그 자체로는 규모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인류 스스로가 자신들의 존재가 생태계의 일부이며, 나의 행복이 동료 인간들, 동식물들과 더불어 물, 공기, 햇볕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깨닫는 일이다. 그래서 저자는 책의 마지막에 종교를 이야기한다. 논쟁의 여지가 있는 결론이지만, 그가 말하고 싶은 것이 ‘인간 영성의 회복’이 아닐까 싶다. 그는 이를 인간과 우주의 “목적”을 되찾는 것이라 표현한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인간이 깨달아야 할 목적은 지구의 관리자(steward)로서의 소명이다. 허먼 데일리는 책의 결론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우리의 조물주로부터 우주 만물을 돌볼 의무를 부여받았다. 생명과 재산을 지원하는 우주의 역량을 그대로 유지하는 의무다”(p.410). 이 목적의식에 기초해 지구의 수용력 이내에서 이루어지는 “지속 가능한 발전”이란 경제적 윤리 목표가 나오고, 충족함을 느끼는 수준으로, 공평하게, 자원 효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사회경제를 조직해야 한다는 원칙이 세워진다.

지금은 한풀 꺾이기는 했지만, 2008년 글로벌금융공황 이후에 주류 경제학에 대한 비판 의식이 높아지고 대안적 경제학을 모색하는 바람이 불었었다. 한동안 숨죽이고 있던 주류경제학자들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정상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양적완화를 지속하느냐 마느냐, 중앙은행의 이자율을 높이느냐 마느냐 등의 뻔한 정책 논의로 모든 것이 덮어졌다. 세계의 경제수장들은 기존 시스템의 근본적인 문제는 옆으로 치워 버리고 기존의 방식대로 세계 경제를 밀고나가려 하고 있다. 아마도 그냥 가지는 못할 것이다.

허먼 데일리의 주장대로 주류 경제학은 시장의 배분의 역량만 믿고, 분배의 경제와 규모의 경제를 무시해 왔다. 지금의 불황은 분배의 문제와 규모의 문제가 그 기저에 자리 잡고 있다. 이 두 문제를 어느 정도라도 해결할 수 있는 경제학이 없이는 불황에서 탈출할 수 없을 것이다. 탈출한다 해도 얼마 못 가 다시 한계에 봉착할 것이다.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이 그러했듯이. 허먼 데일리의 선구자적 혜안을 엿볼 수 있는 이 책의 여러 내용들이 현재 우리가 맞닥뜨린 여러 문제들의 해결책과 관련해 단초를 제공해 줄 것이라 기대하며 역자 후기를 마친다.


 

추천수 72